[칼럼]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동녕선생을 기억하라!

교육부 검정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초대의장 이동녕선생은 없는가?

서문동 남서울대학교 사무처장 | 기사입력 2021/04/12 [23:28]

[칼럼]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동녕선생을 기억하라!

교육부 검정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초대의장 이동녕선생은 없는가?

서문동 남서울대학교 사무처장 | 입력 : 2021/04/12 [23:28]

▲ 천안시 원성동 남파오기리에 세워져 있는 '석오 이동녕 선생' 동상  전경

 

 

[서문동 남서울대학교 사무처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102주년을 기념하며...대한민국 임시정부 이동녕선생을 기억하라!

 

교육부 검정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초대의장 이동녕선생은 없는가?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의미

 

우리나라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한다고 되어 있다. 즉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과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의 로텐더 홀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의장 이동녕 선생의 흉상이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을 제헌국회로 인정한다는 것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민족자결주의 영향을 받은 독립운동

 

1910년 한일병탄으로 우리 민족은 나라 없는 민족이 되었으며, 일제 강점 이후  탄압으로 국내에서 국권회복운동을 할 수 없자 우리 민족지도자들은 만주, 연해주, 등 해외에서 독립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1918년 1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윌슨 대통령은 14개조 평화 원칙을 발표하며, 각 민족은 스스로 정치적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받고 석오 이동녕 선생 등 민족 독립지사들은 독립의 희망을 품고 만주에서 1918년 11월 무오 대한독립선언문을 선포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은 동경 유학생 중심으로 도교 중심가에서 2.8 독립선언이 있었다.

 

1919년 1월 대한제국의 고종황제 독살 소식 등으로 반일 감정이 높아졌으며 이후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지도자 손병희, 한용운, 이승훈 등 민족 대표들이  종로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하였고 시민들과 학생들이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이후 3.1 독립만세 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이후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을 피해 민족지도자들은 해외에 망명하게 되었다.

 

▲ 상해 망명 임시정부 수립에 이동녕선생이 중심이었다.
 
석오 이동녕 선생은 상하이에서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많은 독립 단체들이 통합하여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우리 민족의 힘으로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만주,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며 독립투쟁을 전개하면서 1914년 러시아에서 대한광복군 정부를 수립 운영하였던 경험을 살려 임시정부를 수립하여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독립지사들의 뜻을 모으는데 그 중심에서 앞장서셨다.

 

1919년 4월 10일~11일 프랑스 조계진선푸로(金神父路) 2층에서 각 지역대표 29명이 참석하여 회의를 거쳐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제헌국회라고 할 수 있는 임시의정원을 설립하고 석오 이동녕 선생은 초대의장 즉 제헌국회의장을 맡아 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하여 대한민국 임시헌장 전문과 10개조를 선포하고 관제를 제정하고, 우리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민주주의 삼권분립을 기초로 입법, 사법, 행정의  3권 분립 제도를 확립하여 최초 민주 공화정부를 수립하고 세계열강 등 대내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선포하였다. 

 

임시정부는 3.1 독립선언문을 기초로 일본제국에 대한 식민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해 대한제국 멸망(1910년) 후 9년 만에 “대한민국” 이라는 국호로 새운 망명정부이며, 자유권, 참정권, 평등권을 규정하고, 국민의  기본 의무인 교육, 납세, 병역의무도 규정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9월 제1차 개헌을 통하여 상해, 경성(서울),  연해주(러시아) 등 여러 임시정부를 통합하여 중국 상하이에서 단일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던 것이다.

 

▲ 석오 이동녕 선생의 임시정부에서의 역할

 

석오 이동녕 선생께서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국회) 즉, 제헌국회 초대의장으로 임시정부를 세우고 임시정부 주석 4차례, 임시의정원 의장 3차례, 국무령, 내무총장, 법무총장 등을 역임하시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경영하시고 이끌어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 민족의 지도자이신 자랑스러운 석오 이동녕 선생님, 이동녕 주석님, 이동녕 의장님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잊어서는 안 되는 훌륭하신 분으로 우리나라 후손 대대로 존경받아야 하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건국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임시정부 하면 김구 주석, 3.1 운동하면 유관순 열사를   떠오르도록 교육받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는 중·고등학교 교육부 검정 한국사 교과서를 살펴보면 대다수 임시의정원의 존재와 역할 및 임시정부의 수립과정에 생략하고 있다는 것이다.

 

▲ 역사교과서에서의 임시정부 수립 내용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기술된 내용을 살펴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탄생시킨 임시의정원의 역할에 대하여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

 

특히, 임시의정원을 세우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탄생시킨 그 중심에서 충청도의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하여 독립인사들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임시의정원 이동녕 초대의장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빠져 있음을 매우 안타깝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 기술된 임시정부
 
교육부 검정 중학교 역사 2의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정을 기술한 내용에서 “세계 여러 나라와 외교활동을 펼치기 쉬운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삼권분립에 기초를 둔 민주공화제 정부로”(중학교 역사2 : P162 ㄱ출판사)

 

또 다른 교육부 검정 중학교 역사 2에서 기술한 내용을 보면 “3.1 운동을 전후하여 국내외 여러 지역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이에 자연스럽게 임시정부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논의가 있어 났다. 통합 논의는 국민의회와 상하이 정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논의 결과 기존의 임시정부를 해산하고, 상하이에서 새롭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기로 합의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역사상 최초로 삼권분립에 기초한 민주공화제를 채택하여 임시의정원(입법), 국무원(행정), 법원(사법)을 구성하였다.”(중학교 역사 2 : P178 ㅊ출판사)

 

 △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기술된 임시정부

 

그럼, 교육부 검정 고등학교 한국사 역사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정을 기술한 내용을 보면 “3.1 운동 전후 국내외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하려는 노력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연해주에서는 대한 국민의회가 조직되었고, 중국 상하이에서는 망명한 민족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내에서는 한성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정부들은 곧바로 통합운동을 전개하여 통일된 임시정부를 구성 하고자 하였다.

 

통합과정에서 임시정부의 소재지로 외교활동에 유리한 상하이로 합의되었다. (고등학교 한국사 : P180 ㄱ출판사)

 

또 다른 한국사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에 관하여 기술된 내용을 보면 “1919년 4월 상하이의 독립운동가들은 임시의정원 회의를 열어 ‘대한민국 임시헌장’ 선포하였다.

 

3.1 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을 효율적으로 조작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한성정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 국민의회 등 여러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리고, 이들 정부를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 결과 한성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 국민의회를 통합하기로 하였다.   정부 이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결정하였으며, 위치는 상하이에 두기로 하였다.(고등학교 한국사 : P160 ㄷ출판사)

 

▲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동녕 선생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기초를 놓고,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해 독립투쟁에 헌신하여 1940년 기강 임시정부청사에서 영면하실 때까지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끄시고 경영하시며   유지시켜 오신 분이 바로 이동녕 선생이시다.

 

우리는 광복 76주년이 흐르는 동안 3.1 운동하면 유관순 열사, 유관순 누나, 임시정부 하면 김구 주석만 알고 있다. 우리 민족이 존경하는 김구 주석께서는 백범 일기에서 가장 존경하는 한 분으로 석오 이동녕 선생님이라고 하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독립운동가 석오 이동녕 선생을 우리는 잘 모르고 살아왔다. 석오 이동녕 선생의 활동과 그 업적도 배우지 못하였으며 후손에게 알리지 아니하여 오늘날 우리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못하였으며, 역사 교과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음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민족이 나라를 잃고 헤매일 때 우리 민족의 등불이 되었던 석오 이동녕 선생의 국권회복운동과 민족교육, 임시정부에서의 활동 등에 대하여 새롭게 조명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여 상훈법을 개정을 통하여 서훈 1등급으로 상향해야 한다.

 

우리 후손들에게 독립운동가 석오 이동녕 선생의 삶과 사상,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리고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비참하였던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고 지키며 독립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였던 우리나라 건국의 아버지 석오 이동녕 선생을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야 한다.

 

따라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는데 그 중심에 석오 이동녕 선생이 있었고 1919년부터 1940년까지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독립투쟁을 상생과 통합의 정신으로 막후에서 주도하신 분이 바로 석오 이동녕 선생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학생들이 배워 알 수 있도록 교육부 검정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석오 이동녕 선생의 역할에 대하여 사실적으로 기술하여야 한다.

 

석오 이동녕 선생은 우리 민족의 존재를 세계에 과시하였으며 오늘날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로 유지 발전하게 된 뿌리이며 민주주의 기초를 세우신 자랑스러운 석오 이동녕 선생을   우리 민족의 지도자로 우리 후손들에게 계승될 수 있도록 하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는데 함께 나가야 할 것이다.

 

서문동 남서울대학교 사무처장은 ‘석오 이동녕선생선양회 상임대표’로 독립운동가 석오 이동녕 선생 서훈 1등급 상향 및 이동녕선생 알리기는 앞장서고 있다.

 

또한 제3대 전국대학교(국,공,사립) 사무•총무•관리•재무처(국)장 협의회 전국 회장을 지냈으며 대한적십자사 전국대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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