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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창국화 축제, ‘한반도의 진정한 문화예술의 수도’ 도약 계기 되길...
기사입력: 2018/10/23 [13:47]  최종편집: 로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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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윤재웅 교수
▲동국대학교 윤재웅 교수     © 로컬투데이

 

 

[로컬투데이=고창] 가을이다. 천산만야에 단풍 들고 꽃 핀다. 전국에 가을 꽃 잔치가 벌어진다. 단풍도 아름답지만 형형색색 피는 가을 꽃자리는 그대로 생명의 잔치판이다. 아름답고 눈부시고 향기롭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꽃들의 향연. 코스모스, 구절초, 분꽃, 사근초, 투구꽃, 상사화, 쑥부쟁이…, 여러 꽃들 피어도 가을꽃은 국화가 단연 으뜸이다.

 

서리 내려야 비로소 피는 꽃. 예부터 지조와 절개의 표상이 된 꽃. 올곧은 기상을 가진 선비를 나타내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꽃이 곧 국화다.
 
가을이면 전국이 국화꽃 천지로 변한다. 예서제서 국화 축제를 연다. 지자체도, 학교도, 유명 사찰도 국화꽃 잔치를 펼친다.

 

유난히 푸른 하늘 아래 흰 국화, 황국화, 알록달록한 국화가 갖은 모양을 뽐낸다. 시월에서 십일월까지, 천지산하는 국화 향으로 진동한다.
 
고창 ‘고인돌 공원’에서도 국화 축제가 열린다. 10월 26일부터 11월 11일까지다. 전국에 많은 국화 축제가 있어도 이곳 국화 축제가 유독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2004년 11월 고창 선운리 마을 야트막한 산언덕 전체가 노란 국화로 뒤덮이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게 그 기원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시작하는 <국화 옆에서>의 시인 서정주의 고향이 바로 고창 선운리, 일명 질마재 마을이다.

 

여기는 시인의 생가와 기념관과 묘지가 있는,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곳이다.

 

시인의 생과 사, 그리고 작품 세계를 고스란히 보존해서 전시하는 기념공간이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운명적이다. 모든 게 예비 된 듯하다.

 

시인 서정주의 고향이면서 동시에 ‘한국문학의 영원한 고향’인 곳. 이곳에 가을이면 국화가 활짝 핀다. 벌써 15년째다.

 

관 주도로 시작된 게 아니라 돼지 농장을 하던 한 주민의 아이디어와 열정에 의해서 비롯되었다는 게 특이하다. 그 국화들은 돼지 분변으로 만든 거름으로 특별하게 성장해서 색깔과 향기가 더욱 짙었다.

 

꽃이 핀 산언덕은 시인 서정주의 묘역 일대 5천 평. 1억 송이쯤 되는 노란 국화가 활짝 피자 그 색깔과 아찔한 향기에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주민들도 놀라고 군청도 놀라고 여러 지자체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국화가 필 무렵이면 마을 일대가 아수라장이 될 정도로 몇 해 동안 사람들이 몰렸다. 비슷하게 흉내 내는 축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창이 배출한 시인 서정주의 시는 가져갈 수 없는 법. 시 <국화 옆에서>의 콘텐츠는 고창의 붙박이 자산으로서 변함이 없었다. 국화가 피는 동안 <미당 문학제>도 열려서 국화의 시인 서정주의 문학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져 오고 있다.

 

공간이 좁아 석정 온천지구로 옮겼다가 웰파크시티 준공으로 인해 2016년부터 고인돌 공원으로 옮겨 진행되는 고창 국화 축제. 전국의 국화꽃 축제 가운데서도 유독 돋보인다.

 

국화가 만개하는 고인돌 공원은 버려진 빈 땅이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고창 지역 최고의 유형 문화자산 가운데 하나다. 수천 년 전 청동기 시대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곳. 세계적으로도 그런 군락지가 드물고 드문 곳. 여기저기 자유롭게 널려 있는 돌아간 조상의 집들. 이름 하여 ‘한반도의 첫 수도’.

 

그곳에, 서리 내리는 늦가을에, 아름다운 국화꽃들이 만발한다. 청동기 시대부터 피었을 법한 꽃들. 세계문화유산 한복판에 오늘과 내일 ‘가장 문화적으로’ 피어나야 할 꽃들. 그대 발걸음이 찾아가는 이번 가을에도 피어 있다.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시의 마지막 구절은 꽃이 피는 밤에 잠 못 드는 내 마음을 노래한다.
 
한 송이 꽃이 핀다는 건 세상 오만가지 도움이 필요한 어마어마한 사건이어서 우리는 쉬이 잠들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런 메시지야말로 시로 하는 설법이며, 노래로 들려주는 우주의 진리인 것이다.

 

어려운 부처님 경전, 두꺼운 성경책 끼고 앉아 조는 것보다 국화꽃밭 거닐면서 시를 읊조려 보는 게 삶의 본질에 훨씬 빠르게 다가설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것이 ‘고창 국화’만의 브랜드 가치다. 영광, 함평, 마산, 대청호 일대에서 아무리 국화 축제를 해도 봄날의 소쩍새와 여름날의 천둥, 가을의 무서리를 떠올리는 건 고창의 국화뿐이다. 지역성, 장소성 때문이다.

 

이는 가을 국화를 전 국민의 누님으로 이미지화 시킨 시인의 공덕이다.

 

그 공덕의 가치는 무량해서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문화 유전자는 번식해 나간다.
 
그렇다. 서정주의 국화는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원숙한 아름다움에 도달한 ‘누님’의 이미지를 가진다. 옛날과 같은 지조 있는 선비가 아니다.

 

즉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나오느라 손발이 부르튼 우리의 어머니, 이모, 누님들이 새롭게 주목받아야 한다고 고창의 국화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국화 축제의 차별화가 그래서 중요하다. 콘텐츠의 브랜드 가치와 문화적 의미 등을 보다 깊이 탐구하고, 관민이 지혜를 모아 ‘보여주기’식 면모를 탈피해야 한다.

 

보고, 먹고, 걷고, 냄새 맡고, 사진 찍는 경험 너머를 기획해야 한다.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을 생각하고 ‘잠도 오지 않는 밤’을 문화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래, 시낭송 공연, 뮤지컬, 창극, 영화 등 창의적 아이디어를 준비하고 후원해야 한다.
 
철학과 문화와 예술이 뒷받침된 ‘한반도의 진정한 문화예술의 수도’로 도약하는 일. 21세기 고창군민의 과제다.

 

동국대학교 윤재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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