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나성동 일대'…충청도·전라도·경상도를 잇는 중요 길목이었다

내년 3월 1일까지 국립공주박물관서 백제 계획도시였던 세종 나성동 특별전

김은지기자 | 기사입력 2020/10/21 [15:04]

'세종시 나성동 일대'…충청도·전라도·경상도를 잇는 중요 길목이었다

내년 3월 1일까지 국립공주박물관서 백제 계획도시였던 세종 나성동 특별전

김은지기자 | 입력 : 2020/10/21 [15:04]

 

내년 3월 1일까지 국립공주박물관서 백제 계획도시였던 세종 나성동 특별전

▲21일 이춘희 세종시장과 김정섭 공주시장이 함께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백제 계획도시, 세종 나성동 특별전'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김은지기자)     ©로컬투데이

 

[로컬투데이=세종]김은지기자/ ‘광여도廣濾圖’, ‘해동지도海東地圖’ 등 조선 후기 고지도에서는 나성동 주변을 ‘삼기三岐’라 표기하고 있어, 나성동 일대가 예로부터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잇는 중요 길목이었다.

 

백제의 계획도시인 나성동 유적을 찾아 ‘국립공주박물관’ 속으로 들어가 본다. 이번 전시는 세종시와 국립공주박물관, 세종문화원이 공동으로 개최하며 내년 3월 1일까지 열린다.

 

대한민국의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은 중앙정부가 계획적으로 만든 도시로, 도시 조성에 앞서 문화재 조사가 이루어졌다. 세종 나성동 유적은 지난 2010년 발굴조사결과 물자의 이동을 위한 도로를 건설하고 공간을 구획해 기반시설을 만드는 등 백제의 계획도시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은 바가 있다.

 

또한 다양한 건물터와 한성백제 때의 생활상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유물도 다수 발굴됐다.

 

나성동 일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잇는 중요 길목.

 

나성동에 위치한 독락정獨樂亭은 부안임씨扶安林氏 입향조入鄕祖 전서공典書公 임난수林闌秀(1342~1407)의 둘째아들인 임목林穆(1371~1448)이 만든 정자로, 주변 경관이 뛰어난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조선 전기 남수문南秀文(1408~1442)이 지은 독락정기獨樂亭記에는 “우리 집안이 공주 금강 상류에 거하였는데, 실은 경상·전라·충청도의 요충이요, 강이 이곳에 와서 합류하기 때문에 지명을 삼거리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 일대 지명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알 수 있다.

  

▲내년 3월 1일까지 국립공주박물관서 백제 계획도시였던 세종 나성동 특별전. (사진=김은지기자)  © 로컬투데이

 

▲내년 3월 1일까지 국립공주박물관서 백제 계획도시였던 세종 나성동 특별전 (사진=김은지기자0     ©로컬투데이

 
세종은 백제가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기 전부터 백제 중앙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금강의 물길을 이용하기 편리한 세종 나성동 일대에 백제는 도시를 만들었다. 그 목적은 금강 유역에서 백제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함이었다.

 

나성동 일대에 한성기 백제의 도시가 형성되기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금강을 따라 생활했다. 당시 이 일대는 마한의 영역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마한은 오늘날의 경기와 충청, 전라 지역을 포함해 54개의 소국으로 구성되어 이었다. 세종지역에는 공주와 함께 막로국(莫盧國), 불운국(不雲國), 감해비리국(感奚卑離國) 등의 소국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본격적으로 철기를 제작하게 됐고, 쇠로 만든 농기구의 등장은 생산력의 증가를 가져왔다고 한다. 이로 인해 사회 계층화가 진행되는 등 이전 시기와는 다른 생활의 변화가 나타났다. 세종 일대의 세력이 당시 한반도 남부 지역의 변한·진한 세력들과 교류 했던 양상이 확인되기도 한다.

 

백제는 한강을 배경으로 고대 국가로 성장했으며, 4세기~5세기 초, 현재 세종나성동 일대에 도시를 건설했다. 금강변 북안北岸의 넓은 공터에 도로를 설치해 구획을 나누고, 각각의 공간에 지배 계층 집단의 거주 공간으로 추정되는 구획저택, 그리고 물품의 보관을 위한 지상식 건물, 큰 항아리를 생산한 가마 등의 사회기반시설을 갖추었다.

 

나성동유적의 주변에는 방어를 위한 토성과 도시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무덤들이 위치하고 있어 당시 백제 지방도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대규모 노동력과 물자의 동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나성동 도시는 백제 중앙세력의 주도로 세워진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금강 유역에 대해 백제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과거 백제의 계획도시였던 세종은 1,600여 년이 지난 지금 44개의 중앙행정기관과 15개의 국책연구기관, 4개의 공공기관 등이 자리잡은 인구 약 35만명의 도시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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