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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일만의 양심도 없는 고창 “삼양사 염전”

주행찬기자 | 기사입력 2019/08/01 [08:18]

[기자수첩] 일만의 양심도 없는 고창 “삼양사 염전”

주행찬기자 | 입력 : 2019/08/01 [08:18]

[기자수첩] 주행찬기자/ 오늘날 대기업으로 성장한 삼양사의 모체라 할 수 있는 고창군 심원면 삼양사 염전은 국내에서 2번째로 큰 염전 이였다.

 

 

▲ 주행찬기자     © 로컬투데이

19364월 간척사업에 착수 3년 후인 19398월에 간척지 700를 준공했고 우리나라 최초로 간척사업을 이곳에서 성공적으로 이룩했던 곳이다.

 

서해안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는 삼양사 천일염은 체내의 유해산소를 제거시켜주며 마그네슘의 경우 각 나라의 수입 염에 비해 10배 이상 높은 함량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경사가 완만하며 미네랄이 다량 포함된 양질의 갯벌을 기반으로 하며 PH는 약알칼리성에 가까운 소금으로 우리 몸에 가장 적합한 소금이다.

 

이렇듯 좋은 맛을 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고창 삼양사소금은 80년 역사를 가진 소금으로 이곳에서는 3대가 가업으로 그 명백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 태양광 사업을 하겠다며, 모 태양광 업자가 염전 부지를 다 포함해 삼양사 보유 토지를 약 625천평 총 5623500억원중 계약금56억원에 계약해 오는1231일 까지 16생산어가에 그 어떠한 이주 계획이나 영업상 보상도 없이 오는 31일 날짜로 당신들과 계약 기간이 끝났으니 이곳 부지에서 나가달라는 일방적인 통보다.

 

선친 때부터 평생을 이곳에서 소금 생산으로 삶의 터전을 가꿔온 이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닌 수 없다건강한 모체에서는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는 법이거늘 이곳 어민들의 만시지탄의(晩時之歎)때 늦은 한탄이 흘러나온다.

 

삼양사 염전에서 생산되고 있는 소금과 염전은 우리 고유의 정체성과 문화를 유지해온 곳으로 선대들의 강한 생명력을 듣노라면 장엄하고도 비장한 곡조가 귀를 때리는 곳이다.

 

고창군은 삼양사 염전의 명맥이 끊겨 사라질 위기에 처한 가치 있는 문화자원을 복원하고 재연하여야 한다.

 

적어도 후손에게 빌려온 자연을 복원하고 보전하는 ‘회복의 경제’가 과거의 건설사업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천일염이 2008년 3월 광물에서 식품으로 전환되면서 고창군은 국민들에게 위생적이고 안전한 소금을 제공하고자 염전의 생산시설과 사용자재 등을 개선하고 산지종합처리장(가공시설)을 도입했다.

 

얼마전에는 결정지 바닥재를 불신임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발맞춰 소금 생산량이 많이 나오는 고무장판에서 친환경 타일(도자기) 자재로 재 교체함과 동시에 노동력 절감을 위해 생산 장비의 자동화를 추진해 경쟁력 강화에 나셨던 곳이다.

 

이곳,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천일염 산지종합처리장은 국비와 도비 등 총 사업비 21억원을 들여 6,859㎡(2,070평)의 부지에 건축면적 1,486㎡(450평) 규모로 천일염을 세척하고 탈수·건조한 뒤 가공·소포장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소금의 장점을 살리는 반면, 다른 지역의 소금과 차별화해 소득 증대를 꾀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던 곳이다.

 

최근 의학계에서도 천일염이 인체의 혈압, 염증, 비만 등을 저하시키는 효과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천일염을 이용한 발효식품(김치, 젓갈, 장류 등)에는 높은 유산균 및 유익한 세균이 분포해 암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국내외에서 발표되고 있다.

 

이처럼 어떠한 화학공정도 거치지 않으면서 자연이 주는 천연 식품 첨가제로서 국민 건강에 있어 반드시 권장하고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삼양사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정부 차원의 보호와 육성정책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또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개펄 및 공유수면은 현지인들이 유익하게 사용한 다음 후손들에게 온전하게 물려 줄 의무가 있다. 우리나라 근대화의 시작인 1960~1980년대에는 어떻게든 지긋지긋한 보릿고개의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청정 개펄과 바다를 매립하는 간척사업이 대세였다고 본다.

 

위와 같은 이유로 고창군 심원면에 삼양사 염전도 1936년 4월 간척사업도 착수했을 것이다.

 

그 당시 정책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수립되지 않고, 근시안적 관점에서 추진돼 2000년대를 지나 현재에 와서는 어장 황폐화와 환경훼손 등 문제점이 속출하고 있다. 당시,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할 때 충분한 여론수렴과 국민정서를 반영한 장기적 정책으로 추진했으면 좋았겠다는 기자의 생각이다.

 

당시 어민들은 정부의 정책에 생명줄 같은 개펄을 선뜻 내주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피폐해진 어촌과 가난 뿐 이었다. 개펄매립으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삼양사 염전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전락한 원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삼양사와 지자체의 대책은 무엇이였는가? 때늦은 물음이다.

 

“만시지탄의 후회” 갯벌과 염전을 활용해 환경교육도 하고, 개펄을 통해 휴식을 취하고, 여가를 즐기는 것이 시대의 트렌드로 부각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자연은 우리가 후손들로부터 빌려 쓰는 것이라는 명언도 있는 만큼 이제부터라도 삼양사가 자신들의 사익만을 위해 팔아버린 약 62만 5천평을 잘 보전하고 복원해야 한다.


최소한의 도리를 모르는 삼양사의 이런, 근시안적([近視眼的])태도는 아주 옹졸한 기업으로 6만여 고창군민들에게 영원히 낙인찍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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